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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향기

귀신의 과학
귀신의 과학

새벽 1시. 야근을 마치고 불이 꺼진 컴컴한 건물 복도를 홀로 걷고 있는데, 갑자기 등 뒤에 누군가가 있다는 느낌이 든다. 흠칫 놀라며 뒤를 돌아보았으나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다. ‘유령이었나?’라고 혼자 중얼거리며 다시 걷기 시작하지만, 왠지 모골이 송연해진다. 누구나 한 번쯤은 이런 경험들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요즘과 같은 첨단 세상에 유령 같은 게 어디 있느냐고 반문하겠지만, 몰라도 너무 모르는 소리다. 지구상에 과학이 가장 발전한 나라는 미국이지만, 그 나라의 국민들 중 48%가 유령의 존재를 믿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이 같은 수치는 지난 2005년 CBS 뉴스에서 실시한 여론 조사를 통해 나타난 결과다. 이 뿐만이 아니다. 당시 발표됐던 조사 결과에 따르면 미 여성의 경우 약 56%가 유령이 실제로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파악됐다. 게다가 CBS 조사에서 대상자 5분의 1 이상은 자신들이 실제로 유령을 보았거나, 그 존재를 느꼈다고 말한 것으로 드러났다. ■ 영혼의 무게를 측정하려고 시도한 과학자 유령. 모든 사람들에게 두려움과 공포를 불러일으키는 말이다. 사람들이 유령을 두려워하는 가장 큰 이유는 존재의 여부를 전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진짜인지, 혹은 가짜인지를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무지에서 오는 공포라 할 수 있다. 예로부터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사람들은 ‘사후세계’를 상상했다. 신체가 죽더라도 정신은 남아 있다는 생각이 ‘영혼’이라는 개념을 만들었고, 이는 나아가 유령이라는 공포의 대상과 종교라는 무한의 존재를 이끌어 내는 원동력이 됐다. 하지만 과학이 발전하면서 그동안 영혼에 의해 발생한다고 믿었던 기괴한 현상들이 과학적으로 설명되기 시작하면서 사후세계나 유령은 없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일부 과학자들은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영혼의 존재를 과학적으로 규명하려는 작업도 시도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바로 미국의 던컨 맥두걸(Ducan Macdougal) 박사가 시도한 ‘영혼의 무게’에 대한 실험과 연구다. 던컨 맥두걸 박사는 1907년 한 과학 저널에 영혼이 물리적인 물질이란 것을 증명하는 실험 결과를 발표했다. 임종이 가까운 6명의 환자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사람이 죽을 때 체중이 줄어든다는 것. 이는 많은 논란과 관심을 불러일으키며 영화는 물론 많은 이야기의 주제가 되기도 했던 연구다. 맥두걸 박사의 주장에 반박하는 사람들은 그 질량의 차이가 체내에 있던 수분이나 공기들이 빠져나가면서 발생하는 현상이라 설명했지만, 그는 수분과 공기를 모두 계산해도 21g의 차이가 난다고 설명했다. 또한 개를 대상으로도 같은 실험을 했지만 개에게서는 체중이 감소하는 현상을 관찰할 수 없었다고 밝혔다. 맥두걸 박사의 연구는 여러 학회지에 실리면서 한 때 떠들썩했지만 인체의 전체 질량에 비해 21g은 극히 적은 양이며 오차에 의한 신뢰도가 떨어진다는 주장들로 결국 영혼이 존재한다는 것을 명확히 증명해내지는 못했다. 그러나 이 연구 결과는 서양의 심령학 연구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면서 지난 2003년에는 ‘21그램’이란 제목의 영화로 까지 제작됐다. 또한 조금씩 학문적 체계를 갖추면서, 초능력을 탐구하는 초심리학(Parapsychology)으로 까지 발전하는 계기를 만들었다. ■ 뇌로 전달되는 신호의 왜곡이 공포심을 유발 유령. 정말로 존재하는 것일까? 현대의 과학자들은 이런 의문에 대해 그렇게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과학의 연구 대상이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몇 가지 주목하지 않을 수 없는 사건들이 발생하면서 과학계도 본격적인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그 중 하나가 현존하는 세계 최고의 산악인으로 꼽히고 있는 라인홀트 메스너(Reinhold Messner)가 겪은 사건이다. 메스너는 지난 1970년 6월 히말라야 등정 후 하산을 하다 극도로 피곤한 상태에서 유령이 따라오는 경험을 했다고 최근 소개한 바 있다. 유명 산악인들은 육체적인 건강 외에 정신력도 일반인들 보다 훨씬 강하다. 그렇지 않으면 그 험난한 등반 과정을 이겨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메스너 외에도 여러 산악인들이 등반 과정에서 유령을 접한 경험들이 있는 것으로 파악됐고, 스위스 로잔 공과대의 연구진은 이 점에 주목했다. 유사한 체험들을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것이, 뇌에서 발생하는 어떤 문제 때문이 아닌가하고 추정한 것이다. 이에 따라 연구진은 인공적으로 유령을 만들어내는 실험에 착수했다. 방식은 이렇다. 신체 감각을 인위적으로 조절시키는 로봇으로 뇌 신호를 흐트러뜨려서, 사람들로 하여금 실제 유령이 존재하는 것처럼 착각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림 1. 실험 과정의 개요도. 출처: 스위스 로잔 공과대학(EPFL) 우선 평소에 유령을 본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실험에 들어갔다. 이들의 두 눈은 완전히 가린 상태였기 때문에, 주변 상황에 대해서는 전혀 인지할 수 없는 상태였다. 이어서 연구진은 손과 등, 그리고 허리 부위를 자극하는 용도의 두 로봇을 각각 실험 참가자의 앞뒤로 배치한 뒤, 진동을 가해 느낌이 어떻게 변화하는지를 관찰했다. 이후 나타난 결과는 흥미로웠다. 실험이 어느 정도 진행되자 참가자들 대부분이 “이 방에 나 말고 다른 누군가가 존재하는 것 같다”거나 “제 3의 존재가 나를 감시하고 있는 것 같다”라고 외쳤다. 심지어 참가자 중 두 명은 너무 무섭기 때문에 실험을 당장 중지해달라는 요청까지 한 것으로 드러났다. 두 로봇이 전하는 빠른 진동만으로, 실험실에서 유령을 탄생시키는 순간이었다. 그림 2. 실험 참가자의 모습. 출처: 스위스 로잔 공과대학(EPFL) 이에 대해 로잔 공과대의 올라프 블랑케(Olaf Blanke) 교수는 “해당 실험은 제 3의 존재를 인지하도록 실험실에서 인공적으로 유도한 첫 사례”라며 “유령의 존재란 결국 뇌 감각 신호간의 충돌에서 빚어지는 현상임을 시사하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흔히 사람들이 보았다는 귀신이나 유령이 산악인들이 극단적인 상황에서 겪는 환영과 유사한 것으로 본 것이다. 연구진은 이런 현상들이 ‘뇌의 신호왜곡’과 공통적으로 연관되어 있다고 해석했다. 그러면서 결국 보이지 않는 존재에 대한 두려움이란, 뇌로 정보가 받아들여지는 과정에서 발생된 신호의 왜곡이라고 결론을 지었다. 블랑케 박사는 “바로 이런 현상이 정신분열증의 원인을 해석해 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밝히며 “누군가 자신들을 쫓아오거나 해치려 한다고 생각하는 피해망상 증세를 고칠 수 있는 길이 이번 실험을 통해 열리기를 바란다.”라고 기대했다. 이상으로 스위스의 과학자들이 개발한 인공적인 유령을 만드는 방법에 대해 알아보았다. 그러나 이번 연구 결과가 유령의 존재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뇌의 착각으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쓸데없는 공포에서 벗어나자는 취지가 더 강하다. 어쩌면 이 시대에 필요한 것은 유령의 존재 여부가 아니라, 보이지 않는 실체를 규명하고자 도전하는 과학적 자세일 것이다. 글 : 김준래 과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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