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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소리연구 , 2013년, pp.35 - 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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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류시대에 본 신재효 판소리 교육의 선구성
Sin Jae-hyo and Pansori Education -Current Status under the Impact of the Korean Wave-

김수미 
  • 초록

    적층문학이자 구전심수의 판소리는 시작부터 현재까지, 시대에 따라 다양한 변화를 거듭하면서 오늘날에 이르렀다. 판소리사를 18세기 형성기, 19세기 전성기, 20세기 쇠퇴기로 간략하게 보았을 때, 현재 21세기는 매우 중요한 시점에 와 있는 듯 하다. 21세기가 20세기 쇠퇴기의 연장선으로 갈것인가, 아니면 제2의 전성기가 될 것인가 하는 초두에 있기 때문이다. 당연히 제2의 전성기를 맞고자 한다면, 이에 따른 준비와 실천이 절실히 필요하다 하겠다. 이런 점에서 판소리 후원자, 지도자, 이론가, 논평가, 사설 창작 개작자 등의 역할을 했던 신재효(申在孝:1812~1884)의 행적은 한류시대로 일컫는 오늘날, 미래를 준비하는 판소리 교육의 귀중한 한 전형을 제시하고 있다. 첫째, 우선 신재효는 개인의 유희적 판소리에 머물지 않고 적극적으로 광대들의 후원자와 지도자가 되었다는 점이다. 조선 후기 신분 사회에서 천민인 광대들에게 신재효의 관심은 그 자체만으로도 상당히 고무적이며, 이러한 소통과 교류는 판소리의 지평이 더욱 성장 발전하는데 밑거름이 되었을 것이다. 둘째, 신재효의 판소리 사설 창작과 개작이 갖는 의미이다. 판소리는 이면의 음악이기 때문에 '어떠한 사설이냐'는 판소리 음악을 결정짓는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 광대들의 입장에서 보면, 다양한 사설을 소리로 만들어 불러보는 것이 자신의 음악 세계가 풍성해지는 방편이 될 수 있다. 이 때, 신재효는 사설의 이면이 잘 묘사될 수 있도록 광대들에게 지도자와 논평자의 역할을 하였을 것이고, 광대들에게도 작창자로서의 기회와 경험이 주어지는 것이다. 셋째, 신재효의 판소리 교육의 선구성은 남성들만의 전유물이었던 판소리를 여성에게로까지 확장시킨 점이다. 신재효는 경복궁 낙성연에 최초의 여류명창인 진채선을 준비시켜 내보냈고, 이는 대원군의 총애를 받을 만큼 성공적인 무대를 만들었다. 현재 판소리계에서 여자명창들이 차지하는 비율을 본다면, 진채선의 등장은 단지 개인의 사건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진채선 이후 지금까지 여류명창들의 대거 등장은 신재효의 선구성과 혜안을더욱 돋보이게 한다. 신재효는 판소리에 관한 전체적인 시각과 균형 감각을 가지고, 광대들과 교유하고 교육함으로써 판소리 미래를 준비시킨 실천가적 선구자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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