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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위논문 상세정보

소설 '심청전'에 대한 복식 연구 원문보기

  • 저자

    이수정

  • 학위수여기관

    水原大學校 敎育大學院

  • 학위구분

    국내석사

  • 학과

    家庭敎育專攻

  • 지도교수

  • 발행년도

    2002

  • 총페이지

    v, iv, 79 p.

  • 키워드

  • 언어

    kor

  • 원문 URL

    http://www.riss.kr/link?id=T8955070&outLink=K  

  • 초록

    인간으로서 지녀야 할 효행의 도리를 가르치고 있는 「深靑田」은 우리에게 너무나도 익숙한 고소설이다. 특히 도덕적 윤리가 붕괴되어가고 있는 현 시점에서 소설 「심청전」은 연극이나 뮤지컬 등을 통해 빈번하게 무대에서 재현되고 있다. 그러나 심청전은 대개의 고소설이 그렇듯이 설화적 배경 하에서 형성되어 입으로 전해진 구전설화가 조선시대에 와서 집필되었다. 이처럼 「심청전」의 창작연대와 문자적 기록 연대가 상이하고, 시대적 복식의 고증 없이 제작되었기 때문에 도서 속의 삽화나 무대를 통하여 소개되는 심청전의 등장인물들은 조선시대 복식을 착장한 채로 재현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고려시대가 복식의 공백기라고 할 정도로 복식에 관한 유물이나 문헌이 적어 고려복식의 형태를 알기 어려운 데도 그 이유가 있다. 따라서 고려시대 복식의 개괄적인 고찰에 대한 필요성을 인식하여, 고려시대의 시대적 배경이 되고 있는 소설 '심청전'을 통해 다양한 등장인물들의 모습을 재현하고자 한다. 「심청전」의 서두에서는 그 시대적 배경을 송 말엽이라고 제시하고 있다. 본고에서는 이 작품에 김만중이 쓴 장편소설《九雲夢》의 주인공 성진이와 팔선녀에 대한 이야기가 구체적으로 나오는 사실과 시인 조수삼(1962~1849)이《기이편》에서《이야기책을 읽어주는 늙은이가 책 없이 입으로 국문패설을 읽는바 , , … 등의 전기와 같은 것들이었다.》라고 써놓은 사실로 보아 이 소설은 18세기경에 창작되었다고 보고, 소설 속에 제시된 시대 즉, 송문화권에 든 고려 중기까지의 복식을 중점적으로 알아보기로 한다. 또한 지금까지의 연구자료가 남자의 제도 복식에 치우친 점을 미루어 본고에서는 불화를 통해 민서복과 여자 복식을 중점적으로 고찰하되, '심청전'을 극화하는 관점에서 각 등장인물들의 계층 구분에 따른 복식 형태를 재현해 보기로 하겠다. 참고적으로 고려시대 장신구, 직물 및 문양 등을 첨부하여 당시 생활의식 및 사상의 흐름을 살피고, 의복에 표현된 상징성을 이해함으로 고려시대 특유의 고유성을 찾고, 고려시대의 전반적인 시대상황을 재현하는데 큰 의의가 있다 하겠다. 사여관복 제도 속에서도 엄격히 규제되었던 복식과 서민층에도 허용된 복식이나 두식이 있었음이 매우 흥미롭다 하겠다. 고려인들은 남녀없이 깨끗한 것을 좋아하여 아침에 일어나면 먼저 목욕을 하고 대문을 나서며, 여름이면 냇가에 나가 하루에 두 번씩 목욕을 하였다 한다. 이때 남녀 모두 紵衣·紵裳을 입었다고 한다. 저의는 남녀귀천의 차이 없이 착용한 고려시대의 기본 포제로서 백저포에 鳥巾을 착용했는데, 관수일 때는 袍가 되고 窄袖일 때는 衣가 되며 대와 두식으로 상하, 존비를 구분하였다. 송나라의 서긍이 쓴 『高麗圖經』에 在家和尙의 복장인 白紵窄衣는 착수인 백저포를 가리키는 것으로 조백(조)의 요대를 맨다는 점으로 미루어 볼 때 상고시대의 포의 요대가 여전히 존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왕 또한 평거시에는 조건에 백저포를 사용하여 일반민서와 다른바가 없었다 고려시대에 들어 이에 대한 중요한 실물이 문주사에서 나와 몇 개안되는 고려 때의 복식을 보여주고 있는데, 서민 남자들의 두식은 장가 들기 전에는 다 巾으로 머리를 싸고 내려뜨리거나 검은색 끈으로(黑羅) 머리를 묶고, 내려뜨리고 장가를 들면 속발을 하였는데, 이 속발이란 앞 시대부터 있어 온 일종의 상투였다고 생각된다. 袴는 현재의 바지와 별 차이가 없는 것이라 하겠다. 백관 조복의 경우 송의 제복과는 官制가 다르고 衣制에 있어서는 章紋이 없고 服色이 다르며 方心曲領이 더 들어 있다는 차이점을 나타낸다. 文官들의 官服은 一品에서 九品에 이르기까지 모두 ?頭를 썼으며, 袍는 職品에 따라서 紫文羅袍·緋文羅袍·綠衣를 입었고, 帶도 職品에 따라 玉·金·角·정등의 장식의 구별이 있었으며, 이에 金魚袋 또는 銀魚袋를 차고 있었다. 이를 통해 색과 재료로서 職品 구분을 명확히 하였음을 알 수 있다. 또한 해상무역의 발달로 민서복에서 대표적인 것으로는 주인복의 단갈과 방갓을 들 수 있다. 노동 시 상의를 착용하지 않은 채 단갈만을 착용하기도 하였는데, 이는 뱃사람 뿐 아니라 당시 남자의 노동복으로 두루 입혀졌을 것으로 보인다. 왕실 비빈 귀족 부인들은 우임교령의 상의에 하의로는 장군을 상의 위에 둘러 여며 착용하는 방식으로 외출시에는 송나라 부녀자들이 말을 탈 때 착용한 선군을 속치마 용도로 입되, 치마를 부풀리는 역할을 해 많이 중첩될수록 선호하였다. 公侯貴家로 부터 아래는 민서의 妻妾에 이르기까지 백저의·황상이 上下 婦女의 通服이었다. 홍색은 왕비의 색으로 금하였다. 또한 고려 부녀자들은 얼굴에 분은 바르되 연지는 찍지 않았으며, 검은 갈매기 눈썹의 형태를 가졌다. 부녀자의 일상의복은 백저를 재료로 하는 경우가 많았으며, 꽃무늬는 일반 여자에게는 금지되었다. 여성의 고는 비단으로 지어져 삼국시대와 같이 겉옷으로 착용한 것으로 보인다. 서민층에서는 활동적인 아이템인 고를 백저포에 착용했을 것이다. 삼국시대까지 궁중에서 쓰이던 부채가 고려시대에 와서는 평민들에게 대중화되었다. 귀부녀나 서민녀 모두 백포로 만든 말을 신었으나, 왕비의 대례복의 착장시는 청색의 말을 신었다. 귀부녀들은 사슴가죽으로 만든 석을, 서민들은 남녀노소 할 것 없이 草?와 草履를 신었으며 간혹 牛皮鞋를 신기도 하였다. 『高麗圖經』에 나타난 고려 전기의 여자 복식은 몽수·의·포·대·고·상·선군·강낭으로 구성되었으며 귀부인과 서민 여자들의 복식은 구조에는 큰 차이가 없고 衣次와 修飾에 의해 구별이 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포 위에 맨 늑건의 수식을 달리하여 상하존비를 구별하였다. 고려승은 천승하게 되면 헝겊조각을 누벼 만든 납의를 가장 귀하게 여겼다. 국사의 승려복장은 중국의 승복과 별로 다를 것이 없었다. 효행·덕복의 의미를 상징하는 복전가사를 착용하였다. 당시 중국으로부터의 사라능단의 밀수는 당시 완공·귀족 이하의 호화스러웠던 복식생활에 사치를 더하게 한 요인이기도 했다. 수공업이 크게 발달하여 정교한 제품이 많이 생산되었다. 또한 服色은 시각적 효과만이 아니라 실질적인 차별을 의미하였는데, 고려 시대의 복식 문화에 사용된 다양한 색명들을 통해 볼 때 복색문화는 매우 화려하게 발달되었던 것 같다.


    'Shimchungjun' is a well known classical novel which shows filial piety to devote to one's parents. Breaking down the moral principles, 'Shimchungjun' has performed frequently as a play or a musical drama nowadays. However, 'Shimchungjun' was formed under a narrative literature like other classical novels in Korea. And then the literature was written in the 'Choson' period. As the period of creative works and documents were different and also there's no research on authentic period costumes, the characters in 'Shimchungjun' reappear the costumes of 'Choson' period through the illustration of book and a stage. We called 'The period of Koryo' a costume vacuum because we had a few remains on costume or documentary records. It's very difficult to grasp the type of costume of Koryo period. Accordingly, I recognize that general study of the costume of 'Koryo'. I scrutinized the costume of various characters in 'Shimchungjun' under the Koryo period. At the beginning of 'Shimchungjun', it was constructed with the background of the end of 'Song' period. I studied to focus on the main characters, such as 'Sungjini' and 'Palsungnyu', in 'Kuwunmong' novel by 'Kim,ManJung'. Cho, SuSam (1962-1849) wrote a novel 'Kiipyun', which was similar to Korean novels, 'Sookhyang-jun', 'Sodasung-jun' and 'Shimchungjun'. In the novel ,an old person told a story not reading a book but telling. It means that it was written about the eighteenth century and also I tried to study the costume until the mid of 'Koryo' period affiliated with the Cultural are of 'Song' period. Although the material of resources was emphasized on the costume of men, I studied the style of dress on various characters in 'Shimchungjun' specialized in women's dress coat. For your reference, I scrutinized the trend of thoughts in 'Koryo' period and attached ornaments, textiles and patterns. Understanding the symbolism which was expressed on the cloths, I could find special peculiarity and I studied to reproduce the periodical circumstances of Koryo period in general. I was very interested in studying two styles, restricted costume for an official uniform and general costume for the common people. The 'Koryo' like clean clothes regardless of gender or age. When they usually get up in the morning and take a bath. It is said that they take a bath two times a day in summer and put on ramie cloth. Common people put on 'Jueui'(a hempen hood) regardless of gender and rank which was basic form in Koryo period. This style was classified by the upper and lower classes. In 'KoryoDoKyung' written by Seokeung of Song period, 'Baekjuchakeui', monks clothing, tie a belt with black and white. Considering these points, the belt of ancient times was being existed. Not only common people and but also king put on 'Baekjuchakeui' at ordinary times. The precious remains was founded in 'Moonju' temple in Koryo period and showed the style of dress of 'Koryo' period. Young men usually put on a hempen hood. They wore their hair in a knot when they got married. When it comes to 'Ko', traditional trousers, there is little difference from that of present time. 'Bakwanjobo'(the uniform of a government official) differed from that of 'Song' period and there was no character pattern and varied from the color of costume. The only difference was marked 'Sashimkokryung'(four sides/the chest/bend/a collar). The uniform of a civilian was 'Kundu'(a hempen hood) by official rank from 1st to 9th. In winter season, there were several styles of winter jumper according to the rank such as 'Jamunnapo'(purple silk dress), 'Bimunnapo'(red silk dress) and 'Nokeui'(green dress). Belt was ornamented jade, gold, horn and leather by their rank. There were two kinds of pouches, 'Keumeodae'(gold-fish pouch) and 'Euneodae' silver-fish pouch). We can distinguish the classification of rank with the materials and color definitely. Along with growing overseas trade, the ordinary clothes were 'Dangal' and 'Banggat'(a Koean hat made of horsehair for the principal mourner). These were for sailors as well as workers broadly. Titled ladies fo royal family put on 'Wooimkyoryong' and 'Sungun' as a petticoat when the ladies of Song period rode on horses. The underskirt played a part to swell a skirt for ladies. 'Bakjueui' and 'Hwangsangi' were ordinary clothes ranging from ladies of loyal family to women. The red color was limited to royal family. And also the women of 'Koryo' period didn't make up and had a sea gull shaped eyebrows. The ordinary clothes of women were white ramie clothes commonly and floral patterned clothes were prohibited to the ordinary clothes for women. 'Ko', a breast-tie (breast ribbon) of a Korean coat, was made of silk and women wear as an outer garment. The common people will wear 'Ko' of white ramie clothes which was very active items. The Fan was very popular for royal court in the period of the Three Kingdoms. The ladies of royal family and women put on shoes made of white ramie clothes, but the full dress of queen wore blue boots made of leather. The noble women wore 'Suk'(boots) made of deer skin and common people wore straw shoes regardless of gender and age. Sometimes they wore 'Woopihye' made of cowhide. In the first of Koryo era, the styles of dress were consisted of 'Monso', 'Eui', 'Po', 'Dae', 'Koh', 'Sang', 'Sungkun' and 'Kangnang'. The structure of costume for women made little difference and there was a great difference with decoration. The monks of 'Koryo' period considered a surplice as precious clothes. There was no difference in the costume of monks between Koryo's monks and China's. They put on the surplice symbolized good luck and filial conduct. The smuggling of thick and thin silk from China was a main cause for luxurious costume style of nobles. Handicraft industry was developed and produced dedicated articles. Also, the color of clothes means not only the visual effect but also substantial difference. Through a variety of colors used in the culture of costume in 'Koryo' period, it seemed that the culture of costume was developed gorgeous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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