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契丹의 요동 진출과 渤海의 대응 원문보기
Keoran's Adbancement into Yodong Area & Balhae's Actions

  • 저자

    박지영

  • 학위수여기관

    동아대학교 대학원

  • 학위구분

    국내석사

  • 학과

    사학과

  • 지도교수

  • 발행년도

    2004

  • 총페이지

    iii, 31p.

  • 키워드

    거란 요동진출 발해 한국사;

  • 언어

    kor

  • 원문 URL

    http://www.riss.kr/link?id=T10065445&outLink=K  

  • 초록

    이 연구는 거란의 요동진출과 발해의 대응을 분석하여 발해 멸망의 한 요인을 밝히는데 목적을 두었다. 이 시기 발해에 대한 연구는 관련사료의 부족으로 그 연구가 상당히 미비한 점이 많았다. 하지만, 발해 멸망기 연구는 당시 절도사 체제(번진체제)라고 불리우는 동아시아 국제정세와 밀접한 관련성을 가지고 있었으므로 이를 주목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일반적으로 거란이 발해의 요동지역에 진출하였기 때문에 발해가 거란을 공격하였다고 보고 있으나, 실제로 발해의 거란에 대한 대외적 위기감과 실제적 공격은 반드시 일치하지 않았다. 그것은 당시 거란을 제어하는 유주절도부라는 번진의 존재가 있었기 때문에 나타난 현상이었다. 따라서 발해와 거란의 관계는 단순한 일대일의 관계를 넘어선 유주절도부라는 매개변수가 게재된 복잡한 역학관계의 일환이었다. 그러한 측면에서 본다면, 거란과 발해의 관계는 유주절도부를 고려하지 않고서는 이해하기 힘들다고 보아도 과언이 아니다. 이 연구에서는 당시 중국측 사료와 거란측 사료를 분석하여 당시 유주절도부와 거란이 가지는 교역관계를 주목하였다. 그러한 양자의 교역관계는 발해의 긴장상대인 거란을 제어하는 방어막으로서의 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다. 실제로 그러한 방어막의 파괴는 발해가 거란을 공격하는 강력한 배정으로 작용하였다. 그리고 당시 발해의 지방세력의 성립은 유주절도부와 매우 밀접한 관련성을 가지고 있었으므로, 거란에 대한 유주절도부의 긴장감은 곧바로 발해의 지방세력의 독자성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한편 그러한 지방의 독자성은 곧바로 발해에게 커다란 위기감으로 작용하였던 것이며, 그 위기감은 곧바로 거란을 공격하는 행위로 나타나게 된 것이다. 일반적으로 발해국가의 형성에 대해서는 당과의 관계를 지나치게 중시하여 왔다. 하지만, 발해 국가의 역사전개방식은 오히려 절도사라고 하는 동아시아의 지방세력과 밀접한 관련성을 가지는 것이었다. 그와 함께 발해 지방은 단순히 지방이라는 측면을 넘어서서 매우 독자성을 가지고 있는 존재였다. 발해 지방에 대한 독자성은 발해 국가를 단순히 중앙집권적 국가로 보기에는 어려운 면모들이 많이 나타나고 있다고 보인다. 그렇다면 발해 역시 그 내부구조에 있어서 매우 다양한 구조적 모습을 보인다고 할 수 있으며, 그러한 구조는 번진이라는 동아시아의 지방세력과의 관련성에서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The purpose of this study is to review the cause of the collapse of Balhae by analyzing Keoran's advancement into Yodong Area and Balhae's actions against it. There have been few studies about Balhae of that time due to few related historical materials. More notably, however, the collapse of the antique kingdom was closely related with the situation of the then East Asian region, which was under so-called 'Jeoldosa system(Beonjin system)'. It has been generally believed that Balhae invaded Keoran because the latter advanced into Yodong Area. In fact, however, there was not always coincidences between the invasion and the feeling of crisis Balhae had towards Keoran. It may be probably attributed to the fact that at that time, there was 'Beonjin' called 'Yuju Jeoldobu' controlling Keoran. Therefore, Balhae and Keoran were not just mutually related, but dynamically entangled with each other via Yuju Jeoldobu. It's not too much to say that relations between the two antique nations are difficult to be understood without considering Yuju Jeoldobu. In this study, trading relations between Yuju Jeoldobu and Keoran were focused with historic materials of the then China and Keoran. It seems that such relations played a role as walls defending Keoran. The destruction of such walls befame the very reason why Balhae attacked Keoran. The establishment of local powers in Balhae had very close relations with Yuju Jeoldobu. This made Keoran very nervous, and greatly influenced and promoted the independence of the powers. Such independence became a big threat to Balhae, which in turn attacked Keoran. Regarding the foundation of Balhae, so far, relations between the nation and Chinese T'ang have been emphasized. However, the history of Balhae was developed under close relationships with its local powers in East Asian region which were relying on 'Jeoldosa system'. In fact, the local powers clearly had their own originality beyond relations with Balhae. Such originality suggests that in many respects, it is difficult to regard Balhae just as a centralized nation. Thus Bahae has its internal structure of diverse aspects, especially supported by relations with its local powers of East Asia under 'Beonjin syst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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