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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위논문 상세정보

(A) Study of Official Stamp Punchung Ware at Seobudong, Gyeungju 원문보기
慶州 西部洞 出土 官司銘 粉靑沙器 硏究

  • 저자

    심지연

  • 학위수여기관

    東亞大學校 大學院

  • 학위구분

    국내석사

  • 학과

    고고미술사학과

  • 지도교수

  • 발행년도

    2004

  • 총페이지

    ix, 109p.

  • 키워드

    분청사기 도자공예 고고미술사학 도자기;

  • 언어

    kor

  • 원문 URL

    http://www.riss.kr/link?id=T10065467&outLink=K  

  • 초록

    본 논문은 경주 서부동 19번지 유적에서 출토된 관사명 분청사기의 사용 시기에 대한 분석을 통해서, 조선시대 전기의 경주부에서 사용되었던 관사명 분청사기의 수요공급 및 경주지역출토 분청사기의 시기별 특징에 대해 살펴보고자 하는데 목적이 있다. 본 연구에서는 먼저 서부동 19번지 유적에서 출토된 관사명자기의 사용 시기를 밝히기 위해 강경숙의 편년을 기본으로 삼았다. 그리고 『조선왕조실록』 에 나타난 경주부 관련기사를 참고하여 경주부 집경전의 변화와 서부동 19번지 유적간의 상관 관계를 비교하였다. 그 결과 서부동 19번지 유적에서 출토된 다양한 관사명 및 인화분청사기들은 시문방법과 문양의 변화에 따라 모두 2시기로 구분할 수 있었다. 제1기(1398-1420)는 태종의 재위기간이며 왕권의 강화를 위해 경주의 집경전을 비롯한 전국의 4곳에 태조의 진영(태조진전)을 설치하고 태종에 의해서 매년 집경전에서 대향과 별제를 올리도록 하였다. 이러한 의례에는 많은 공납자기와 제기들을 필요로 하였을 것이다. 이시기는 전대의 청자 제작기술을 이어받은 분청사기가 제작되어 흑백상감분청이 등장하는 시기이다. 제2기(1420-1470)는 世宗-睿宗의 在位期間이다. 太宗이 행한 일련의 규제조치(1417년-관사명 기입)와 세종3년의 제도(1421년-제작자의 이름을 기입)에 의해 분청사기의 품질이 매우 향상되는 시기이다. 서부동 19번지 유적에서 출토되는 「慶州長興庫」, 「慶州俯長興庫」, 「慶州公須」 등의 관사명 분청사기는 대부분 2기에 해당하며 일부 수혈유구 출토유물은 일부 수혈에서는 문양과 시문수법의 시기적인 변화가 확인되었다 제 3기(1470-1494)는 睿宗에서 成宗의 치세기간이다. 서부동 19번지 유적에서 이시기의 유물은 확인되지 않는데 서부동 19번지 유적에 대한 발굴조사가 부분적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일 가능성이 있다. 따라서 자료의 증가를 기대할 필요가 있다. 서부동 19번지 유적에서는 기존에 알려진 관사명 분청사기 이외에도 지방관청(역)에서 운영경비인 공수전의 소출로 제작된 「公須」 銘의 관사명이 확인되었다. 문헌기사를 비교 검토한 결과 상한연대는 1425年으로 추정하였고 관사명 분청사기의 제작과정에 있어 회계장부(重記)에 의해 체계적으로 관리되었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리고 「公須」 銘 이외에도 기존에 알려지지 않은 지방관청에서 제작되었다고 생각되어지는 관사명 자기(「營」 銘, 「官」 銘)가 출토될 가능성을 엿볼 수 있었다. 조선시대 전기에 제작된 공납자기는 당시 조세제도 아래서 현물로 수납된 여러 물품중의 하나이다. 광주관요의 설치와 『經國大典』의 반포로 현물 공납이 폐지되기까지 당시 사회경제에 있어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였다. 특히 관사명 자기는 자기에 표기된 해당 관사에서 사용된 관물로 생산지에서 최종소비지까지의 이동경로를 추정해 볼 수 있다. 따라서 서부동 19번지 유적에서 출토된 관사명 분청사기는 경주부 관내의 여러가마에서 생산된 분청사기들이 경주부로 집하되어 재분배 되었다는 것을 입증하고 있다. 조선전기의 관사명 분청사기의 공납제도에 관해 더 많은 자료들이 축적된다면 조세제도와 토지제도의 변화과정과도 함께 연계시켜 고찰될 것이다.


    According to the periodical analysis of Punchung-Ware which excavated from Seobu-dong, Gyungju. I aimed to find out the facts; one is arranging the supply-demand system of official stamped Punchung-Ware in Gyngju, early Chosun Dynasty, the other if to figure out the distinction. To estimate when it used, first of all I lend the time-standard the Dr, Kang Kyung-suk's. Moreover refreshing some related statement of Chosun-wangjo-sillok 『朝鮮王朝實錄』. I compared the relationship between ruins of "#19, Seobu-dong, Gyeungju" with the changing of Zip Kyeong-palace in Gyeungju. As a result of analysis-method of to how put patterns and changing of patterns- it was possible to distinguish two-differential periods. The first-period(13981420) was under King Taejong's rule, to enforce of dignity installed Taejo-Jinjun all over the territorial include the 集慶殿(Zipkyeong-palace) in Gyeungju, and then he asked to hold a ritual-ceremony(great-ceremony and separated ceremony) every year. This kinds of ritual ceremony was follow a lot of a tributed-ware and ritual-material. It was time to introduce of black-white inlaid Punchung- ware which is a sort of Punchung-ware. The second-period(14201469), the country was ruled from King Sejong to Sukjong. The quality of Punchung ware enhanced sharply because of regulatory by King Taesong and stamping of the name of artisan and his post. The official stamp Punchung ware which stamprd "慶州長興庫(Gyeungju JangHumGo)", "慶州府長興庫(Gyeungju-Bu JangHumGo)", "慶州公須(Gyeungju Gongsu)" is likely turn to two-periods. And I could conformed a periodical change by some patterns and method of putting pattern. The third-period(14691494) was under control of King Sukjong to King Sungjong. In this ruin the materials are unfounded in this period. Because of partial excavation, it is difficult to find most remains and materials. Therefore it remains the expectation of increase in material. Stamped "公須" ware was also found. It produced by local government expense. Comparing with historic record, I can find two of fact. The one is about the upper limit-year; it is presumed 1452. The other is about the management system; the precedure of production must be worked institutionally with an accountant book. Like"公須", it is possible to discover the official ware putted "營(Young)" and ''官(Kwan)" which managed to local government. Tributed ceramic ware was one of the actual thing taxation in early Chosun Dynasty.'rho actual thing taxation system was revoked the establichment of Kwang ju official kiln and promulgating law 『經國大典』 (GyeungKukDaeJun : code of Chosun Dynasty). Tributed ceramic ware played a important role in social economy under the actual thing taxation. Especially, it is useful material to presume the route from the producing center; marked name of local government to the last consuming area. According to tribued stamping Punchung ware excavated from #19 Seobu-dong, it is proven kilns in inner city of Gyeungju-bu were gathered in Gyeungju-bu and re-distributed. If on data which is about tributed official-stamp ware accumulate, a bright horizon will come up to us with the relation of taxation and syst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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