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HOME> 논문 > 논문 검색상세

학위논문 상세정보

남북한의 지대지 미사일 경쟁 연구 : 결정요인 및 전력을 중심으로 원문보기
Arms Race of the Two Koreas in Surface-to-Surface Missiles : Determinants and Capabilities

  • 저자

    장철운

  • 학위수여기관

    북한대학원대학교

  • 학위구분

    국내박사

  • 학과

    군사안보전공

  • 지도교수

    함택영

  • 발행년도

    2014

  • 총페이지

    337 p.

  • 키워드

    남북한 지대지 미사일 탄도 미사일 순항 미사일 군비경쟁;

  • 언어

    kor

  • 원문 URL

    http://www.riss.kr/link?id=T13538447&outLink=K  

  • 초록

    그동안 남북한의 지대지 미사일 개발은 별개의 것으로 인식돼 온 경향이 강하다. 그러나 남북한은 지대지 미사일 경쟁을 벌여온 것이 사실이다. 이러한 문제의식 하에서 본 연구는 다음과 같은 3가지 질문을 제기했다. 첫째, 남북한이 언제 지대지 미사일 경쟁을 시작했으며, 경쟁의 양상이 어떻게 변화했는가? 둘째, 남북한은 왜 지대지 미사일 경쟁을 벌였는가? 셋째, 남북한의 지대지 미사일 전력을 비교하면 어떠한 결과가 도출되는가? 남북한의 지대지 미사일 경쟁은 1970년대 시작됐다. 남한은 1970년대 초반 자주국방정책의 일환으로 지대지 탄도 미사일 개발에 착수해 성공을 거뒀다. 북한은 1970년대 중반 중국과 함께 지대지 탄도 미사일 개발을 추진했지만 실패한 뒤 1980년 1월 이집트에서 구 소련제 스커드-B를 도입해 독자적 지대지 탄도 미사일 개발을 위한 발판을 마련했다. 이에 기반해 북한은 1980년대 중반 스커드-B 모방형 미사일을 개발했다. 같은 시기 남한도 1980년대 초반 폐기했던 백곰 개량형 개발 계획을 부활시켜 현무 지대지 탄도 미사일을 개발했다. 북한은 1990년대 초반 스커드-C 유사형 및 노동 미사일 개발에 성공했고, 1998년 장거리 로켓을 발사했다. 북한의 백두산-1호 발사 이후 남한은 지대지 미사일 개발을 위한 제도 개선에 나섰다. 남한은 미국과 협상을 벌여 탄도 미사일의 사거리를 180㎞에서 300㎞로 연장하고 순항 미사일의 사거리 제한을 사실상 폐기했다. 이를 계기로 남한은 2000년대 지대지 순항 미사일 개발에 박차를 가해 2006년께부터 최대사거리가 1,500㎞에 달하는 현무Ⅲ 시리즈를 차례로 선보였다. 또한 최대사거리가 500㎞인 현무 Ⅱ 탄도 미사일을 개발했다. 이 시기 북한은 3차례에 걸쳐 핵실험을 단행하면서 무수단·KN-08 등 중·장거리 미사일을 선보이고 우주발사체인 은하-2/3호를 발사했다. 북한은 고체 연료를 사용하는 KN-02 단거리 지대지 미사일도 개발했다. 남북한의 지대지 미사일 경쟁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요인은 양측이 지속하는 군비경쟁 및 동맹관계와 같은 안보적 요인이라고 할 수 있다. 북한의 청와대 기습 사건, 아웅산 테러, 핵·미사일 능력 강화에 대응해 남한은 자주국방정책, 현무 미사일 개발, 현무Ⅱ/Ⅲ 개발 등을 추진했다. 또한 주한미군 철수와 같은 한미동맹 변화는 남한을 군사력 증강에 나서게 했다. 한편 북한의 지대지 미사일 개발에는 남한의 자주국방정책, 한·미 연합 전력 강화에 따른 재래식 군사력의 열세, 탈냉전으로 인한 미국으로부터의 직접적 위협 등이 영향을 미쳤다. 소련 등 동맹관계 악화 역시 북한이 군사력 증강에 나서게 된 중요한 요인이다. 남북한의 지대지 미사일 경쟁에는 비안보적 요인도 영향을 미쳤다. 남북한의 최고지도자는 자신의 권력을 강화하기 위해 지대지 미사일을 적극 활용했다. 남한에서 지대지 미사일 개발을 둘러싸고 벌어진 국방부와 국방과학연구소 사이의 갈등과 같은 이른바 '관료정치'의 영향도 무시할 수 없다. 국제적인 대량살상무기 비확산 체제도 양측의 지대지 미사일 개발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이다. 2000년대 중반 이후 나타나는 남북한 지대지 미사일 경쟁의 강화는 결국 안보딜레마로 이어질 것이다. 이 같은 딜레마를 해소할 수 있는 방안은 남북한이 서로에 대한 지대지 미사일 위협을 함께 줄여나가는 것이다. 이를 위한 방안 가운데 하나로 남북한이 비교적 대등하게 보유하고 있는 단거리 지대지 탄도 미사일의 공동 감축 및 폐기를 위해 노력하는 것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남북한이 상징적인 수준에서라도 이러한 내용에 합의한다면 이것이 남북관계에 미치는 영향력은 막대할 것이다.


    For some time the surface-to-surface missile (SSM) development programs of South and North Korea were considered as separate issues. However, there was clearly an (asymmetric) arms race between the two Koreas in SSMs. This study tries to answer the following three questions: 1) When did South and North Korea first begin the SSM race? 2) Why did South and North Korea begin the SSM race? 3) What results can we observe from comparing the SSM capabilities between the two Koreas? The arms race in missiles between the two Koreas began in the 1970s. South Korea (Republic of Korea or ROK) successfully completed the development of SSM as a part of its self-reliant national defense policy in the 1970s. North Korea (Democratic People's Republic of Korea or DPRK) began SSM development in the mid-1970s jointly with China; however, after failed attempts North Korea introduced Soviet Scud-B missiles from Egypt in January 1980 and independent development of SSM began to gain a foothold. In the mid-1980s, North Korea developed a copy of the Scud-B missiles. During the same period, South Korea revived the Paekkom (Polar Bear) modified NHK-Ⅰ program and developed Hyunmu NHK-Ⅱ SSM. In the early 1990s, North Korea succeeded in similar Scud-C and Nodong missile development and launched a long-range rocket in 1998. After North Korea successfully launched Paektusan-1, South Korea initiated SSM development system reform. South Korea negotiated with the United States to extend the ballistic missile range from 180㎞ to 300㎞ and disposed the range restriction of cruise missiles. This spurred development of cruise SSMs in South Korea in the 2000s, and in 2006 South Korea introduced a series of Hyunmu Ⅲ missiles that reached a maximum range of 1,500㎞. In addition, South Korea developed Hyunmu-Ⅱ ballistic missiles with a maximum range of 500㎞. During this time, North Korea conducted three nuclear tests, paraded what appeared to be intermediate-range ballistic missiles such as the Musudan and KN-08, and launched its space launch vehicles (SLV) Unha-2 and Unha-3. North Korea also developed short-range, solid-fueled SSM KN-02. National security, with its continuing arms race and alliance relations, is the most influential factor in the SSM competition between the two Koreas. North Korea's raid on the Blue House in 1968, Rangoon bombing of 1983, and growing nuclear and missile capabilities resulted in South Korea's response being the development of a self-reliant defense policy, and Hyunmu missile (Ⅱ and Ⅲ) development. In addition, changes in the ROK-US alliance such as the withdrawal of US forces have led South Korea to accelerate its military buildup. On the other hand, North Korea's SSM development was influenced by South Korea's self-reliant military policy, the strengthened combined capabilities of ROK-US forces against North Korea's weakened conventional forces, and direct threat from the United States in the post-Cold War era. In addition, North Korea's weakened alliance with the Soviet Union also played a critical role in North Korea buildup of military force. Non-security factors also influenced the SSM race. The leaderships of both Koreas actively took advantage of the SSM programs to strengthen their power. In addition, in South Korea, internal conflict/bureaucratic politics between the Ministry of National Defense and Agency for Defense Development (ADD) surrounding SSM development cannot be ignored. The International weapons of mass destruction (WMD) non-proliferation regime also served as an important factor in each Korea's SSM development. Since the mid-2000s, heightening inter-Korean competition in SSM is likely to lead to a security dilemma. This dilemma can be solved when both South and North Korea reduce the threat of SSM together. As an alternative measure, both sides should consider limitation and reduction of short-range ballistic surface-to-surface missiles, which are relatively comparable in size. Even from a symbolic perspective, the impact of such agreement would be highly influential on future inter-Korean relations.


 활용도 분석

  • 상세보기

    amChart 영역
  • 원문보기

    amChart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