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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민주청년동맹 연구 : 당적 지도의 제도화 과정을 중심으로 원문보기
"The Democratic Youth League" of North Korea : Development and Institutionalization of Party Guidance

  • 저자

    곽채원

  • 학위수여기관

    북한대학원대학교

  • 학위구분

    국내박사

  • 학과

    정치통일전공

  • 지도교수

  • 발행년도

    2014

  • 총페이지

    368 p.

  • 키워드

    북한 사회주의 체제 조선로동당 조선민주청년동맹 당적 지도 제도화;

  • 언어

    kor

  • 원문 URL

    http://www.riss.kr/link?id=T13538504&outLink=K  

  • 초록

    본 연구는 북한 청년동맹의 원형인 조선민주청년동맹(민청)의 조직과 성격, 역할을 당적 지도의 제도화 과정을 중심으로 고찰하는 데 목적이 있다. 연구는 해방 직후 조선민주청년동맹의 결성이 준비되었던 시기로부터 1964년 사회주 의로동청년동맹으로 개편되기 직전까지를 다루었다. 북한의 청년동맹은 당의 지도하에, 청년을 사회주의 체제의 계승자로 양성함과 동시에, 사상적으로, 조직적으로 통제하는 역할을 담당해 왔다. 조선민주 청년동맹 결성 당시 당과의 관계는 당의 통일전선 정책에 따라 공식화되지 못했으나, 당은 민청에 대한 영향력을 점차 강화했다. 1956년 제3차 당대회 이후 민청 내부 문헌들은 민청에 대한 당의 지도, 당의 방조자이자 후비대로서 민청의 역할을 규정했다. 사회주의 체제 청년단체로서 청년동맹의 성격은 1961년 제4차 당대회와 1964년 민청 제5차 대회에서 공식화되었다. 민청의 조직과 인적 구성, 역할은 시기에 따라 변화했다. 결성 초기 민청의 지도부 구성은 당 지도부의 연합적 성격을 반영했다. 한편 민청 하급단체에서는 맹증 등록을 통한 맹원 정리, 사상교양의 강화 등 민청단체의 인적구성의 변화를 위한 작업이 진행되었다. 이 시기 민청의 역할은 당시의 정치적 과제였던 각종 사회개혁과 정권수립을 지원하고, 인민경제계획의 목표를 달성하도록 청년들을 동원하는 것이었다. 민청 제3차 대회를 계기로 사상교양단체로서의 민청의 성격이 규정되었다. 민청 지도부 구성에는 여전히 당 지도부의 연합적 성격이 반영되었으나, 이 시기부터 민청은 당의 정책을 수행하는데 더욱 적극적인 태도를 보였다. 6.25전쟁 과정에서 남북한 민청이 통합되었다. 전선과 후방에서 다수의 간부들과 맹원들이 희생당했기 때문에, 전쟁을 통해 민청 내에서 세대교체가 이루어졌다. 전쟁에서 공을 세운 군인들에 대한 입당추천제도는 당원 세대교체의 촉매 역할을 했다. 이 시기 민청은 전쟁수행과 후방복구 사업에 청년들을 적극적으로 동원하였으며, 전쟁 과정에서 민청의 기여는 이후 민청의 정치적 위상을 제고하는 계기가 되었다. 정전 이후 사회주의적 개조를 포함한 본격적인 과도기의 사업들이 진행되었다. 또한 이 시기, 김일성 및 만주 빨치산 계열에 의한 당권의 통일작업이 병행되었다. 당 지도부 성격의 변화는 민청에 반영되어, 김일성 계열이 장악한 당중앙위원회 간부들이 민청 중앙위원장직에 취임했다. 사회주의식 교육을 받은 새로운 세대들은 민청 각급 단체의 지도부에 포진했다. 이 시기 민청의 역할은 사상교양과 간부 양성, 그리고 경제건설을 위한 노동력 동원에 집중되었다. 특히 의무교육제도가 실시됨에 따라 학교와 민청의 유기적 연계가 형성되었고 학교 민청단체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사상교양을 지원했다. 민청은 사회주의 체제 청년단체의 모델로서 소련의 콤소몰을 원용했으며, 조직운영 뿐 아니라, 사상교양, 당원 및 간부양성, 국가 보위, 경제건설에의 노동력 동원 등 체제건설과 유지의 핵심 조직으로서의 역할도 받아들였다. 1960년대 이후 조선로동당은 근로단체들에 대한 영향력을 급속히 강화했다. 근로단체들을 포함한 사회 전반에 대한 당의 강력한 통제는 북한을 다른 사회주의 국가들과 구별 짓는 특징이 되었다. 체제의 계승과 체제에의 순응이라는 상징성은 민청을 통해 청년들에게 부여되었으며, 청년이 체제의 '주체'이자 '객체'로 다루어지는 청년정책의 이중성은 북한 체제유지의 핵심적 요인으로 이해할 수 있다.


    This study explores the establishment and development of “the Democratic Youth League (DYL)”, as the original form of the youth league of North Korea. The analysis is focused on the institutionalization of party guidance to the DYL, which characterizes socialist system to rule a state. The study deals with a specific period of time from preparing the establishment of the DYL in the post-liberation to immediately before reorganizing it to "the League of Socialist Working Youth" in 1964. North Korea's Youth League has been fostering the youth as a successor of the regime, but at the same time, controlling them ideologically and systematically under the guidance of the Korean Worker's Party(KWP). Thus, the youth of North Korea has been represented as a “subject” and “object” of the regime. At the early stage, the Party could not direct the DYL officially because the “United Front” policy made them to represent popularity, their communist identity unexposed. However, the party influence over the DYL had been gradually increased. After the Third Party Congress in 1956, the DYL was to receive direct guidance by the KWP and defined to serve the party as a reserve and supporter of it. The DYL's identity and subordination to the KWP was officially recognized at the forth Party Congress of 1961 and the fifth DYL Congress of 1964. Before the third DYL Congress in 1948, the KWP had tried to improve the DYL substructures through the member registration system and ideology indoctrination. During this period of time, the DYL was expected to support important political challenges such as government establishment and social reforms and to mobilize young people in order to achieve the target figures of the national economic plan. The DYL was identified as an ideological education organization at the third Congress in 1948. During the Korean War, the DYL in the South and the North were unified in January of 1951. The war was a turning point both to the KWP and the DYL in terms of generational shift. Considerable numbers of the youth died and many of the survivors got chances to join the KWP. A new generation trained in a new education system was transfused into the DYL. The DYL's pivotal role to conduct a war and mobilize the youth in a reconstruction process enhanced its political stature. At the end of the war, a full-scale of socialist reconstruction projects including agricultural collectivization had been in progress, while the KWP hegemony was heavily concentrated on Kim Il Sung and his group. The change in the party leadership influenced directly to the DYL leadership. Newly appointed party officers of the Central Committee took charge of the DYL leadership. During the transition period, the co-working system between the educational system and the DYL formulated to indoctrinate ideology to the youth. The DYL trained reserve officers for various organizations at various levels, and mobilized the youth to socialist economy development during this time. The DYL adapted the form, contents and its historical experiences from the KOMSOMOL of the Soviet Union, the first youth league of the socialist states. As a vanguard of the regime, the DYL faithfully executed various tasks assigned by the KWP. However, since 1960s, the KWP strengthened its influences to and enforced a tight control over the mass organizations, which became a remarkable and distinguished feature in youth policy of North Korea. Ambivalent youth policy fostering the youth as successors and conformists of the system is one of the most important characteristics understanding the North Korean regi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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