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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세기 백제의 한강 유역 지배 양상 원문보기

  • 저자

    오세정

  • 학위수여기관

    고려대학교 교육대학원

  • 학위구분

    국내석사

  • 학과

    역사교육전공

  • 지도교수

    박현숙

  • 발행년도

    2014

  • 총페이지

    67장

  • 키워드

    5~6세기 백제 한강 유역 완충지대;

  • 언어

    kor

  • 원문 URL

    http://www.riss.kr/link?id=T13541306&outLink=K  

  • 초록

    본고는 그동안 고대사 연구에 있어 중요한 과제로 인식되어 온 5 ~ 6세기 한강 유역의 영유 문제에 대해서 재검토해 보았다. 이 논의의 쟁점은 한성 함락 직후부터 551년에 이르는 시기까지 고구려가 한강 유역을 영유하였다는 통설, 그리고 이러한 통설에 대한 반론과 재반론이다. 필자는 사료와 고고학적 유물의 결과를 종합적으로 검토하여 5 ~ 6세기 한강 유역의 영유권에 대한 제 논의를 검토해보았다. 그리고 『三國史記』백제본기의 기사에 대한 긍정적 재해석과 함께 고고학적 연구 결과를 종합적으로 검토하여 475~551년의 약 80여 년이라는 긴 시간을 네 시기로 세분하여 고찰해보았다. 문주왕․삼근왕 시기의 논의에서 가장 쟁점은 장수왕의 한성 함락 이후 퇴군 문제였다. 이에 대해서는 장수왕이 한성 함락 이후 한강 북안의 아차산 보루로 물러갔으며, 476년 2월 한북의 백성들을 고구려로부터 보호하려는 사민의 정책을 펼치고 있어 아직까지 한강 유역에 대한 백제의 관할권이 유효하였음을 확인하였다. 또한 동성왕 집권 초반에는 적극적인 한강 유역 공략을 펼쳤으며, 그 결과 한산성을 회복하여 한강유역의 영유권을 차지하기에 이른 것을 확인하였다. 이러한 적극적 한강 유역 진출은 해구의 반란을 진압한 진씨 세력이 국난 타개를 위해 한강 유역의 회복에 사력을 다했을 것으로 보이며, 그 결과 진로는 482년 9월 이전에 한산성을 다시 회복하였을 것이라는 결론에 이르게 되었다. 이어 무령왕代에는 즉위 초부터 공격적인 대고구려 정책으로 임진강 이남 지역에서 역을 징발할 정도로 영역지배 하였고, 그 이북까지 진출하여 요충지에 성을 쌓을 정도로 영유권을 행사했음을 추론할 수 있었다. 그러나 529년 오곡전투는 이러한 상황을 역전시켜 한강유역의 영유권이 고구려에게 넘어갔으나, 이 시기 고구려는 내분으로 인해 매우 혼란스러운 상황이었다. 안장왕代는 고구려의 정치상황이 복잡하게 전개되던 시기로, 안장왕은 529년 오곡전투 이후 2년 만에 결국 피살되었다. 이후 고구려의 내분은 양원왕代까지도 계속되었다. 따라서 고구려는 이 시기 한강유역에 대한 영유권을 확고히 하지 못했을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시기에 성왕은 신라와의 군사동맹을 재개함으로써 551년 다시 한강유역을 회복하게 되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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