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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리버드 : 한국에서의 미 해병대 헬리콥터 : 미 해병대 예비군 퇴역 중령 로날드 브라운 원문보기
Whirlybird : U.S. marine helicopter in Korea : lieutenant colonel Ronald J. Brown U.S. marine corps reserve, retired

  • 저자

    강현철

  • 학위수여기관

    高麗大學校 人文情報大學院

  • 학위구분

    국내석사

  • 학과

    英語飜譯學科 英語飜譯專攻

  • 지도교수

    김은성

  • 발행년도

    2014

  • 총페이지

    148 p.

  • 키워드

    Brown, Ronald J 헬기 육군 항공;

  • 언어

    kor

  • 원문 URL

    http://www.riss.kr/link?id=T13542550&outLink=K  

  • 초록

    1950년 6월 25일 북한의 남한 침공 당시 미국은 전 세계에 군사원조를 요청했고 임시 해병사령부를 편성한 후 한국지역으로 출발했으며 최초의 회전익 항공대인 헬리콥터 파견대를 구성했다. 이 파견대가 바로 해병대 입체포위작전의 원조가 되었다. 해병대는 미군에서 헬리콥터를 가장 늦게 도입했지만 야전에서 실제 임무를 수행한 최초의 부대가 되었고, 미 제5해병대의 제1여단 6해병관측대대는 최초의 회전익 항공대로 공중정찰, 해군 포병사격 관측 등 다양한 임무를 수행할 수 있는 부대를 구성하라는 명령을 수령한 후 한국으로 이동해 진해 해군기지에 주둔지를 마련했다. 이 부대는 1950년 8월 지휘통제, 공중정찰, 의무후송, 전투탐색구조, 포병사격, 긴급물자 공수, 원거리 전초기지 병력 공수, 고속통신선 설치 등의 임무를 수행하였으며 헬기가 할 수 있는 모든 다양한 임무를 수행했다. 한국은 많은 산으로 이루어져 있어 도로망이 매우 취약했고 찌는 듯한 더위와 싸워야했지만, 몇 달 뒤에는 '시베리아 특급'이라 불리는 극심한 추위와 엄청난 눈과 싸워야했다. 한국전시 지형의 특성상 포장도로 부족, 평지 부족, 무전기 소통제한 등의 문제가 가장 컸지만, 헬기는 이런 지형의 제약을 받지 않았으며 교통정체 지역 또는 길이 없는 황무지 상공을 쉽게 날아갈 수 있었다. 위급상황 발생 시 지휘관이 직접 현장에 방문하여 작전지도를 실시하고 지침을 하달할 수 있게 한 것도 바로 헬리콥터였다. 당시 작전간 많은 문제점 중 하나는 부정확한 지도였으며, 이는 헬기로 공중정찰을 실시함으로써 헬기가 항법지도를 대신하도록 해주었다. 장병사기에 중요한 영향을 줬던 임무는 항공의무후송과 공중탐색구조 임무였다. 의무후송 작전 중 야간 임무간에는 조명장비도 없이 차량 전조등 불빛에 의존해 착륙했으며, 이를 시작으로 1,000회 이상의 야간 의후송작전이 실시되었다. 그 당시 민수용 헬기를 군용 의무후송용으로 운용하다보니 많은 문제점이 발생했고 이에 따라 많은 개선사항이 요구되었다. 그 다음으로 많은 횟수의 임무가 실시된 건 추락한 조종사 구조임무였다. 임무간 헬기는 적의 공격을 받아 손상되기도 했고 비행중 적 소화기 공격을 피하기 위해 회피기동을 시작했다. 이로 인해 겉보기에 약해보였던 헬기가 과거에 생각했던 것보다 더욱 강력하다는 것이 입증되었지만, 헬기에는 별도의 무기가 없었기 때문에 지형추적 비행으로 최대한 기동하는 것이 최선의 전술이었다. 헬기를 운용해 본 포병과 보병 지휘관들은 헬기 운용에 대해 더욱 극찬했고 더 큰 범위의 헬기 운용 개념을 발전시키고 있었으며, 추가적인 헬기 도입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었다. 많은 고위관리들이 헬기를 이용했으며 그들의 가장 큰 불만은 헬기가 충분히 많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이렇게 해병헬기의 성공적인 임무는 작전전구 밖으로 멀리 날아가 작전할 수 있는 작전반경이 더욱 넓어지는 효과를 가져왔다. 조신저수지 전투간 6해병관측대대는 원산으로 이동했고 이곳에서는 높은 고도와 어려운 환경조건 속에서의 헬기 생존성이 평가되었다. 고고도 저온상태에서 양력이 감소되고 바람이 강한 조건에서의 산악지형 비행은 매우 위험했으며, 의무후송에 적합하지 않은 민수용 헬기의 형상으로 인해 부상환자의 발이 외부로 노출되어 동상환자가 많아졌다. 이렇게 헬기는 지형과 날씨에 제약을 많이 받았으며, 당시 극심한 추위와 짧은 해, 정비시설 부족으로 이보다 어려운 악조건 속에서의 비행은 상상하기도 힘들었다. 해병 제1사단의 대규모 교전 참가 시 제6해병관측대대도 총력전을 펼쳤는데 이 작전을 통해 HO3S 헬기가 군용 헬기로서 부적절하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더욱 효율적인 의무후송장치가 절대적으로 필요함에 따라 독자적인 수송헬기가 필요했고 그 당시 헬기업체에서는 이런 헬기를 개발중이었으며 곧 전투에 투입될 예정이었다. 의무후송간에는 병원함으로 직접 환자를 수송해 더 많은 환자를 간편하게 후송시킴으로써 헬기의 우월성이 또 한번 입증되었고 병원함 정비간 헬기착륙대가 고안되어 추가로 장착되었다. 이처럼 헬기는 다방면에서 지상부대가 가진 취약한 분야를 손쉽게 해결해 줌으로써 한국전 기간 동안 그 유용성을 증명해 보이기 시작했고 작전간 식별된 개선사항에 대해서는 지속적인 항공기 형상변경과 성능개량을 통해 발전해 나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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