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HOME> 논문 > 논문 검색상세

논문 상세정보

근대전환기 한국화단에의 日本畵 유입과 한국화가들의 일본체험 - 1890년대부터 1910년대까지
The Transmission of Japanese Style Painting in Korea from 1890s to 1910s

강민기  
  • 초록

    1890년대에서 1910년대까지는 근대 전환기로서 한일 양국의 화단은 조선왕조의 종말과 신흥 일본 제국의 건설이라는 대조적인 정치상황 속에서 전개되었다. 이 시기는 사실상 일본화가들의 내한 활동이 시작되는 기점이기도 하며, 개항기의 한일 회화 교류와 1920년대부터 풍미하는 일본화풍 논의가 복합적으로 얽혀 있는 과도기이기도 하다. 한국화단에의 일본화 유입은 러일전쟁 후 일본인들의 한반도 이주가 자유로워지면서 종군화가로서, 또는 대한제국 황실 내에서 御眞(왕의 초상화)이나 휘호 활동을 했던 화가들에 의해 시작 되었다. 이러한 일본화가들의 활동은 망국의 군주를 위한 단순한 오락물과 황실 내의 반일감정을 무마시키는 정치적인 회유 수단으로 이용되었으며, 그들이 남긴 회화는 결과적으로 황실 내부를 일본식으로 장식하여 식민지하의 '조선'이라는 이미지를 대내외적으로 공고히 하는 데 이용되었음을 지적할 수 있다. 기존에 어진을 그린 화가로 알려진 후쿠이 코비(福井耕美), 안도 나가타로(安藤仲太郞) 외에 야마모토 바이가이(山本梅涯), 스즈키 시미쓰로(鈴木鍉三郞), 후지타 쓰쿠지(藤田嗣治) 등이 이번 연구에서 새로 확인된 화가들이다. 그 밖에 국립중앙박물관이나 국립고궁박물관 소장의 일본화 중에서 오하시 비슈(大橋美州), 가나이 텐로쿠(金井天祿)는 그림 위에 쓴 '美州'와 '天祿'이라는 사인만 알려져 있었으나 화가의 이름이나 한국에 온 시기, 그리고 각각 조선물산공진회와 대한제국 황실에서 활약했던 화가임을 밝혀냈다. 이들은 안도 나가타로나 후지타 쓰쿠지를 제외하면 일본 근대 미술사에서 무명화가들이었고, 그들의 발탁 경위는 통감부나 총독부의 일본인 관료들의 추천에 의해서였다. 한국에 정착했던 아마쿠사 신라이(天草神來)나 시미즈 토운(淸水東雲), 구보타 텐난(久保田天南) 같은 일본화가들은 서울에 개인 화숙을 열어 일본인 제자들을 교육했고, 그들의 제자들은 한국 근대화단에서 활동했던 대표적인 화가가 되었다. 신라이나 토운 같은 화가들은 한국의 서화가들과도 교류하며 전통적인 수묵문화를 공유하는 공감대를 이루었다. 하지만 1910년대 중반을 넘어가면서 한국화단 내에 일본화가들의 수가 늘어나고 일본화가들 사이에 사승관계가 형성되면서 점차 일본화풍의 특성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일본화가들에 의해 전람회라는 새로운 전시제도가 도입되어 전통적인 寫意的 수묵문화가 지배적이던 한국화단에 변화를 가져왔으며, 서구문화의 적극적인 유입과 함께 전통화단에 대한 반성의 기운을 불러일으켰다. 아편전쟁 이후 청의 와해로 중화주의에 바탕을 둔 중세적 세계관에 변화가 왔던 점은 전통화단의 변화에 중요한 요인이 되었다. 또한 일본에 대해서 오랫동안 지녀온 문화적 우월의식도 이 시기에는 변화를 가져와 일본은 개화정책의 새로운 모델이 되었으며, 문화적으로도 선진화된 이미지로 변화되었다. 安中植, 楊基薰, 許百鍊, 蔡龍臣의 직접적인 일본 체험도 일본화의 유입적 측면과 관련하여 중요하다. 정치적 망명으로 일본에 갔던 안중식과 달리 양l훈, 허백련, 채용신은 일본에서 전시회를 열거나, 개인화숙에서 미술교육을 받기도 했으며 또는 일본에서 일본 명사들의 초상화를 대량으로 제작한 경우도 있었다. 이들이 일본에서 제작한 작품들은 당시 유행하던 일본화풍에


    Korea and Japan developed their artists" world in contrasting situations with the downfall of the Joseon Dynasty and the establishment of the Japanese imperial rule in the period from 1890s to 1910s-a turning point to modern times. Japanese artists started their work in Korea from this time. and it is also a transitional epoch when Japanese painters arrived in Korea and their style exerted influence on Korean painting in a complex form. The Japanese painting styles into Korean painting started from Japanese war artists who had moved freely into Korea after the Russian-japanese War. the King"s portraitists in Joseon Dynasty. This Japanese painters" work was used as an entertainment for the King of ruined country and political conciliation for anti-Japanese emotions in the Imperial. The paintings decorated the palace of the Great Han Empire as Japanese style to confirm the Joseon Dynasty as a colony. In this paper, I found that Yamamoto Baigai (山本梅涯). Suzuki Shimizuro (鈴木鍉三郞) and Fujita Tsukuji (藤田嗣治) were also the King"s portraitists as well as Fukui Kobi (福井耕美) and Ando Nagataro (安藤仲太郞), I also found the real names of Ohasi Bishu (大橋美州) and Kanai Tenroku (金井天祿). who were only known as having worked as artists in me Nationwide Exposition of Joseon (朝鮮物産共進會) and the Great Han Empire. They were minor painters except Ando and Fujita. They were employed upon the recommendation of Japanese Colonial Office. Then in Korea lived Japanese painters like Amakusa Sinrai (天草神來), Shimizu Toun (淸水東雲) and Kubota Tennan (久保田天南). They opened their private studios in Seoul and educated Japanese disciples. who became prominent painters in Korean modem painting circle. Sinrai and Toun associated with Korean painters and sympathized with the traditional literati culture. Around the mid 1910s. however. a number of Japanese painters in Korea has increased and pointed to Japanese art taste. The Introduction of the new mode of exhibition system changed Korean painting, which had been dominated by traditional ink painting, and resulted from self-examination about traditional Korean paintings. Probably it was a cause that the traditional view of Chinese world was collapsed after the Opium War. Japanese painting style was actually recognized as an ideal and civilized model. The direct experience of An Jung-sik (安中植), Yang Ki-hun (楊基薰), Heo Baeg-ryeon (許百鍊) and Chae Yong-sin (蔡龍臣) in Japan are also important in connection with the influx of Japanese style painting (nihonga), Unlike An. Jung-sik who went to Japan for political asylum, Yang Ki-hun Heo Baeg-ryeon and Chae Yong-sin held an exhibition in Japan, taught in a private-art studio or painted many portraits of notable Japanese. These paintings did not represent early the Japanese style. which was popular in those days. Even the paintings expressed once some new tools like a drawing touch. the artists did not change their painting style. Rather, they experienced direct the disciple training system at the private-art studio and the exhibition system instead of the painting style. However, from the mid-1910s the influence of nihonga appeared on the painting style of Korean painters. Experience of Korean painters in Japan and role of Japanese painters worked in Korea influenced the Korean painting style as well. It is important that nihonga at a turning point in modem times come and diffused in Korean painting circle under the time spirit in the whole Korean culture-an circles, that will create a new age style. the spontaneous desire of Korean painting circles and the colonial situation at that time.


  • 주제어

    일본화(Nihonga) .   일본화가(Japanese painter) .   일본인 종군화가(Japanese war painter) .   丹靑會(Tanseikai) .   如雲社(Jounsha art group) .   京都派(Kyoto art circle).  

 활용도 분석

  • 상세보기

    amChart 영역
  • 원문보기

    amChart 영역

원문보기

무료다운로드
유료다운로드

유료 다운로드의 경우 해당 사이트의 정책에 따라 신규 회원가입, 로그인, 유료 구매 등이 필요할 수 있습니다. 해당 사이트에서 발생하는 귀하의 모든 정보활동은 NDSL의 서비스 정책과 무관합니다.

원문복사신청을 하시면, 일부 해외 인쇄학술지의 경우 외국학술지지원센터(FRIC)에서
무료 원문복사 서비스를 제공합니다.

NDSL에서는 해당 원문을 복사서비스하고 있습니다. 위의 원문복사신청 또는 장바구니 담기를 통하여 원문복사서비스 이용이 가능합니다.

이 논문과 함께 출판된 논문 +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