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古文化 = Korean antiquity 7건

  1. [국내논문]   문화유적 관리계획 수립에 관한 연구 - 유적관리의 개념과 계획수립과정을 중심으로 -  

    한상우 (경상북도문화재연구원)
    古文化 = Korean antiquity no.65 = no.65 ,pp. 5 - 29 , 2005 , 1229-5302 ,

    초록

    이 논문은 문화유적 관리를 위한 기본개념의 이해, 그리고 계획 수립의 여러 개별과정과 그 과정에서 요구되는 기본적인 이론과 고려사항에 대한 제안과 검토를 통해 체계적이고 효과적인 문화유적 관리계획의 수립방안을 제시하는 것에 그 연구목적이 있다. 효과적인 문화유적 관리계획 수립을 위하여서는 서구의 문화유적 관리의 개념과 이론의 적용과 더불어 우리의 문화유적이 가지는 고유한 특성과 그 속에 내재된 비물질적인 의미와 중요성을 잘 보존할 수 있는 방안들이 충분히 고려되어야 하며, 유적의 원형보존이라는 개념과 더불어 유적 기능의 보존이라는 개념이 적용되어야 한다. 또한 이를 바탕으로 문화유적이 가지는 여러 가지 교육적 그리고 문화관광의 자원으로서의 가치도 적극적으로 활용함도 큰 중요성을 지닌다. 이는 문화유적의 보존은 그것이 가지는 가치를 보호하여 유지하는 것이며 원형보존은 이를 위한 하나의 수단일 뿐 그것이 궁극적인 목표는 아니기 때문이다. 문화유적 관리계획은 대상 유적의 확인(identification), 유적의 평가(assesment), 유적관리를 위한 정책 수립(design of management policy), 유적관리를 위한 실천방안 수립(design of management Practice), 그리고 마지막으로 계획의 평가와 보완을 위한 모니터링 단계(management monitoring system for evaluation and revision of the plan) 등의 일련의 중요한 과정들을 거쳐 수립된다. 이러한 관리계획 수립의 각 과정은 신중하게 계획되어지고 철저하게 실천되어야 완성도가 높은 종합 관리계획을 수립할 수 있다. 유적의 확인과정에서부터 유적의 평가, 정책 수립, 실천방안 수립, 그리고 모니터링에 이르는 유적 관리계획 수립의 전 과정에 주민들의 직접적인 참여 기회가 보장되어야 하며 이를 위한 다양한 방안들이 강구되어야 한다. 또한, 우리의 소중한 문화유적의 체계적이고 효과적인 관리계획의 수립을 위한 국가차원의 소위, '한국문화유적관리준칙'을 시급히 마련하여, 우리 문화유적의 고유한 특징과 우리나라의 여러 상황에 맞는 기준과 개념, 그리고 실천 체계를 완비하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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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국내논문]   삼국시대 원환비고  

    이상률 (부경대학교박물관)
    古文化 = Korean antiquity no.65 = no.65 ,pp. 31 - 55 , 2005 , 1229-5302 ,

    초록

    원환비는 한 개의 독립된 원환이 재갈멈추개의 역할을 하는 특징적인 재갈로서 삼국시대, 특히 6세기대를 중심으로 우리나라 중남부지방에서 유행하였다. 그 형태는 원환 자체 혹은 입문에 따라 다양하나 우리나라의 경우 입문이 없는 정원형 원환이 주류이다. 그래서 다양한 형태의 입문이 발달한 일본의 원환비와 좋은 대비를 이룬다. 원환비의 출현은 6세기1/4분기에 백제와 (대)가야지역에서 비롯되며 이로부터 신라, 일본으로 전파되면서 기존의 표비나 판비와 더불어 새로운 마장문화를 형성해 나갔다. 원환비의 변화는 함, 인수, 원환 등 각 구성요소와 이들의 연결방법을 통해 살필 수 있다. 각 구성요소의 경우 함은 3연식에서 2연식으로, 인수는 두가닥에서 한가닥으로 변하며 원환은 처음에 크게 제작되다가 점차 크기가 줄어드는 특징이 있다. 또한 철봉의 단면은 원형에서 방형으로 변해 나간다. 원환비에서 가장 주목되는 변화는 이들 구성요소의 연결방법이다. 처음에는 유환이 있고 원환이 함외환에 걸린 형식을 백제와 가야가 공유한다. 그러나 5세기2분기를 전후하여 백제에서는 유환이 없는 형식으로의 빠른 변화가 상정되며 이후 이것이 주류를 점한다. 또한 원환은 유환의 유무와 상관없이 함외환에 걸리는 특징이 있다. 이에 비해 가야에서는 일정기간 동안 유환을 더욱 활용한다. 그래서 함외환에 걸려 있던 원환을 유환에 걸기도 하며 때로는 유환의 기능이 극대화된 상황에서 이를 변모, 종국에는 유환을 원환화한 새로운 형식을 채용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후 가야에서 점차 유환이 없는 형식이 유행하는데, 이를 통해 6세기대 백제마구의 가야 확산의 일면을 엿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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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국내논문]   일본 고대의 빈(모가리)에 대하여  

    강윤석
    古文化 = Korean antiquity no.65 = no.65 ,pp. 57 - 80 , 2005 , 1229-5302 ,

    초록

    본고는 한국 상장례 중에서 빈의 연구에 대한 선행적인 작업으로써, 일본 고대의 빈(모가리)에 대한 기본적인 내용을 살펴보는데 있다. 빈(모가리)은 일본 고대의 상장례 중의 하나로서, 사람의 죽음부터 장지에 매장하기까지의 기간 동안에 행해진 일련의 의례를 말한다. 이것은 ${\ulcorner}$ 위지 ${\lrcorner}$ 위인전이나 ${\ulcorner}$ 일본서기 ${\lrcorner}$ 등의 문헌기록에도 나타나 있다. 이러한 문헌기록을 통해서 3세기대부터 상장례에서 빈이 행해졌음을 알 수 있다. 또한, 고고학에서도 식륜의 배치나 선각화 및 장식벽화에서도 빈 의례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본고에서는 특히 빈의 기간, 빈옥의 위치 및 구조, 그리고 讀의 내용에 대해서 고대의 문헌기록과 고고 유구 및 유물을 대상으로 검토하였다. 빈의 기간에 대해서는 문헌기록마다 다르며, 또한 같은 천황이라도 2개월부터 5년 8개월 등으로 일정하지 않다. 또한 고고학적 검토에서는 인골과 사람의 대변 분석을 통하여 문헌기록의 8일이나 10여일로 합치한다고 보고 있다. 빈옥의 위치는 옥외에 있다는 문헌기록과 고분의 주위에 있다는 고고학적 연구결과도 있다. 빈옥의 구조에 대해서도 문헌의 기록에서는 칼로써 베어 무너뜨릴 수 있는 간단한 구조로 기술되어 있는 반면에, 고고학의 가형식륜이나 장식벽화에 묘사된 것을 보면 견고한 가옥구조로 되어 있다. 빈 동안에 실시된 의례는 문헌기록이나 고분의 식륜배치 및 장식벽화에 나타난 것을 종합 해 볼 때, 사자의 초혼이나 진혼등을 위한 가무나 기도, 그리고 공선의례 등이 실시된 것으로 보인다. 본고는 일본 고대의 빈에 대한 검토이지만, 한편으로는 한국 고대의 빈 연구에 있어서 참고가 될 부분이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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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국내논문]   전주향교 완영책판(完營冊板) 보존현황 및 활용방안  

    홍성덕 (전북대학교 박물관 ) , 김철배 (전북대학교 대학원 사학과)
    古文化 = Korean antiquity no.65 = no.65 ,pp. 81 - 106 , 2005 , 1229-5302 ,

    초록

    본 연구는 전주향교에 소장되어 있는 완영책판에 대한 조사연구이다. 완영책판은 조선시대 전라감영에서 서적을 간행할 때 사용하던 책판으로 지금까지 알려진 바로는 諦늣논 ${\ulcorner}$ 주자대전 ${\lrcorner}$ ${\ulcorner}$ 성리대전 ${\lrcorner}$ 등 총 11종 4,290판이 보관되어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실제 조사한 결과 769개가 많은 총 10종 5,059개의 책판이 보존되어 있는 것으로 파악되었다. 전주향교에 소장되어 있는 완영책판의 종류는 ${\ulcorner}$ 자치통감강목 ${\lrcorner}$ , ${\ulcorner}$ 동의보감 ${\lrcorner}$ , ${\ulcorner}$ 주자대전 ${\lrcorner}$ , ${\ulcorner}$ 율곡전서 ${\lrcorner}$ , ${\ulcorner}$ 성리대전 ${\lrcorner}$ , ${\ulcorner}$ 증수무원록언해 ${\lrcorner}$ , ${\ulcorner}$ 사기 ${\lrcorner}$ , ${\ulcorner}$ 사략 ${\lrcorner}$ , ${\ulcorner}$ 호남삼강록 ${\lrcorner}$ , ${\ulcorner}$ 주서백선 ${\lrcorner}$ 등 총 10종이다. 이들 서적을 모두 제작할 경우 책판은 10,621개 21,238면이 필요하다. 이를 기준으로 볼 때 장판각 소장 완영책판의 현존율은 책판 $47.6\%$ , 면수 $46.3\%$ 이다. 또한 중복된 면이 219면이므로 실제적인 면수 현존율은 $45.2\%$ 이다. 육안조사에 의한 충해피해의 정도는 $5.51\%$ 258개이며, $90.19\%$ 의 책판 4,562개에서는 쪼개짐이나 균열의 피해가 조사되었다. 이런 이유는, 책판 좌우에 있는 마구리를 헤어내는 과정에서 무리한 압력을 가하여 책판과 마구리를 고정하였던 철심부를 중심으로 가로로 쪼개지거나 균열이 발생하였기 때문으로, 마구리의 부존율이 $92.2\%$ 인 점과 연관되어 있다. 탈첨자와 같은 보각의 흔적은 $2.89\%$ 인 292면에서 발견되었으며, 보각한 편 4점이 책판 이송과정에서 수습되었다. 복각의 경우 총 216면이 2개 이상 복각되었고, 동일책판이 2개 복각된 것은 213개, 동일책판이 3개 복각된 것은 3개가 각각 보존되어 있다. 완영책판은 조선시대 지방 관청에서 사용한 책판으로는 유일한 것으로 문화재적 가치는 매우 크다. 특히 전라도 지역의 기록문화전통과 연계해 볼 때 완영책판의 효율적인 보존관리와 심도 있는 조사연구가 요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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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국내논문]   사단법인 한국대학박물관협회 법인등록 경과보고  

    채현석
    古文化 = Korean antiquity no.65 = no.65 ,pp. 109 - 111 , 2005 , 1229-5302 ,

    초록

    본 연구는 전주향교에 소장되어 있는 완영책판에 대한 조사연구이다. 완영책판은 조선시대 전라감영에서 서적을 간행할 때 사용하던 책판으로 지금까지 알려진 바로는 諦늣논 ${\ulcorner}$ 주자대전 ${\lrcorner}$ ${\ulcorner}$ 성리대전 ${\lrcorner}$ 등 총 11종 4,290판이 보관되어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실제 조사한 결과 769개가 많은 총 10종 5,059개의 책판이 보존되어 있는 것으로 파악되었다. 전주향교에 소장되어 있는 완영책판의 종류는 ${\ulcorner}$ 자치통감강목 ${\lrcorner}$ , ${\ulcorner}$ 동의보감 ${\lrcorner}$ , ${\ulcorner}$ 주자대전 ${\lrcorner}$ , ${\ulcorner}$ 율곡전서 ${\lrcorner}$ , ${\ulcorner}$ 성리대전 ${\lrcorner}$ , ${\ulcorner}$ 증수무원록언해 ${\lrcorner}$ , ${\ulcorner}$ 사기 ${\lrcorner}$ , ${\ulcorner}$ 사략 ${\lrcorner}$ , ${\ulcorner}$ 호남삼강록 ${\lrcorner}$ , ${\ulcorner}$ 주서백선 ${\lrcorner}$ 등 총 10종이다. 이들 서적을 모두 제작할 경우 책판은 10,621개 21,238면이 필요하다. 이를 기준으로 볼 때 장판각 소장 완영책판의 현존율은 책판 $47.6\%$ , 면수 $46.3\%$ 이다. 또한 중복된 면이 219면이므로 실제적인 면수 현존율은 $45.2\%$ 이다. 육안조사에 의한 충해피해의 정도는 $5.51\%$ 258개이며, $90.19\%$ 의 책판 4,562개에서는 쪼개짐이나 균열의 피해가 조사되었다. 이런 이유는, 책판 좌우에 있는 마구리를 헤어내는 과정에서 무리한 압력을 가하여 책판과 마구리를 고정하였던 철심부를 중심으로 가로로 쪼개지거나 균열이 발생하였기 때문으로, 마구리의 부존율이 $92.2\%$ 인 점과 연관되어 있다. 탈첨자와 같은 보각의 흔적은 $2.89\%$ 인 292면에서 발견되었으며, 보각한 편 4점이 책판 이송과정에서 수습되었다. 복각의 경우 총 216면이 2개 이상 복각되었고, 동일책판이 2개 복각된 것은 213개, 동일책판이 3개 복각된 것은 3개가 각각 보존되어 있다. 완영책판은 조선시대 지방 관청에서 사용한 책판으로는 유일한 것으로 문화재적 가치는 매우 크다. 특히 전라도 지역의 기록문화전통과 연계해 볼 때 완영책판의 효율적인 보존관리와 심도 있는 조사연구가 요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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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국내논문]   ASEMUS 참가기  

    장인경
    古文化 = Korean antiquity no.65 = no.65 ,pp. 112 - 124 , 2005 , 1229-5302 ,

    초록

    본 연구는 전주향교에 소장되어 있는 완영책판에 대한 조사연구이다. 완영책판은 조선시대 전라감영에서 서적을 간행할 때 사용하던 책판으로 지금까지 알려진 바로는 諦늣논 ${\ulcorner}$ 주자대전 ${\lrcorner}$ ${\ulcorner}$ 성리대전 ${\lrcorner}$ 등 총 11종 4,290판이 보관되어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실제 조사한 결과 769개가 많은 총 10종 5,059개의 책판이 보존되어 있는 것으로 파악되었다. 전주향교에 소장되어 있는 완영책판의 종류는 ${\ulcorner}$ 자치통감강목 ${\lrcorner}$ , ${\ulcorner}$ 동의보감 ${\lrcorner}$ , ${\ulcorner}$ 주자대전 ${\lrcorner}$ , ${\ulcorner}$ 율곡전서 ${\lrcorner}$ , ${\ulcorner}$ 성리대전 ${\lrcorner}$ , ${\ulcorner}$ 증수무원록언해 ${\lrcorner}$ , ${\ulcorner}$ 사기 ${\lrcorner}$ , ${\ulcorner}$ 사략 ${\lrcorner}$ , ${\ulcorner}$ 호남삼강록 ${\lrcorner}$ , ${\ulcorner}$ 주서백선 ${\lrcorner}$ 등 총 10종이다. 이들 서적을 모두 제작할 경우 책판은 10,621개 21,238면이 필요하다. 이를 기준으로 볼 때 장판각 소장 완영책판의 현존율은 책판 $47.6\%$ , 면수 $46.3\%$ 이다. 또한 중복된 면이 219면이므로 실제적인 면수 현존율은 $45.2\%$ 이다. 육안조사에 의한 충해피해의 정도는 $5.51\%$ 258개이며, $90.19\%$ 의 책판 4,562개에서는 쪼개짐이나 균열의 피해가 조사되었다. 이런 이유는, 책판 좌우에 있는 마구리를 헤어내는 과정에서 무리한 압력을 가하여 책판과 마구리를 고정하였던 철심부를 중심으로 가로로 쪼개지거나 균열이 발생하였기 때문으로, 마구리의 부존율이 $92.2\%$ 인 점과 연관되어 있다. 탈첨자와 같은 보각의 흔적은 $2.89\%$ 인 292면에서 발견되었으며, 보각한 편 4점이 책판 이송과정에서 수습되었다. 복각의 경우 총 216면이 2개 이상 복각되었고, 동일책판이 2개 복각된 것은 213개, 동일책판이 3개 복각된 것은 3개가 각각 보존되어 있다. 완영책판은 조선시대 지방 관청에서 사용한 책판으로는 유일한 것으로 문화재적 가치는 매우 크다. 특히 전라도 지역의 기록문화전통과 연계해 볼 때 완영책판의 효율적인 보존관리와 심도 있는 조사연구가 요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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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국내논문]   協會 외  

    편집부
    古文化 = Korean antiquity no.65 = no.65 ,pp. 127 - 205 , 2005 , 1229-5302 ,

    초록

    본 연구는 전주향교에 소장되어 있는 완영책판에 대한 조사연구이다. 완영책판은 조선시대 전라감영에서 서적을 간행할 때 사용하던 책판으로 지금까지 알려진 바로는 諦늣논 ${\ulcorner}$ 주자대전 ${\lrcorner}$ ${\ulcorner}$ 성리대전 ${\lrcorner}$ 등 총 11종 4,290판이 보관되어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실제 조사한 결과 769개가 많은 총 10종 5,059개의 책판이 보존되어 있는 것으로 파악되었다. 전주향교에 소장되어 있는 완영책판의 종류는 ${\ulcorner}$ 자치통감강목 ${\lrcorner}$ , ${\ulcorner}$ 동의보감 ${\lrcorner}$ , ${\ulcorner}$ 주자대전 ${\lrcorner}$ , ${\ulcorner}$ 율곡전서 ${\lrcorner}$ , ${\ulcorner}$ 성리대전 ${\lrcorner}$ , ${\ulcorner}$ 증수무원록언해 ${\lrcorner}$ , ${\ulcorner}$ 사기 ${\lrcorner}$ , ${\ulcorner}$ 사략 ${\lrcorner}$ , ${\ulcorner}$ 호남삼강록 ${\lrcorner}$ , ${\ulcorner}$ 주서백선 ${\lrcorner}$ 등 총 10종이다. 이들 서적을 모두 제작할 경우 책판은 10,621개 21,238면이 필요하다. 이를 기준으로 볼 때 장판각 소장 완영책판의 현존율은 책판 $47.6\%$ , 면수 $46.3\%$ 이다. 또한 중복된 면이 219면이므로 실제적인 면수 현존율은 $45.2\%$ 이다. 육안조사에 의한 충해피해의 정도는 $5.51\%$ 258개이며, $90.19\%$ 의 책판 4,562개에서는 쪼개짐이나 균열의 피해가 조사되었다. 이런 이유는, 책판 좌우에 있는 마구리를 헤어내는 과정에서 무리한 압력을 가하여 책판과 마구리를 고정하였던 철심부를 중심으로 가로로 쪼개지거나 균열이 발생하였기 때문으로, 마구리의 부존율이 $92.2\%$ 인 점과 연관되어 있다. 탈첨자와 같은 보각의 흔적은 $2.89\%$ 인 292면에서 발견되었으며, 보각한 편 4점이 책판 이송과정에서 수습되었다. 복각의 경우 총 216면이 2개 이상 복각되었고, 동일책판이 2개 복각된 것은 213개, 동일책판이 3개 복각된 것은 3개가 각각 보존되어 있다. 완영책판은 조선시대 지방 관청에서 사용한 책판으로는 유일한 것으로 문화재적 가치는 매우 크다. 특히 전라도 지역의 기록문화전통과 연계해 볼 때 완영책판의 효율적인 보존관리와 심도 있는 조사연구가 요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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